스포일러 없는 블레이드 러너 감상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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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일러 없는 블레이드 러너 감상평
  • 저자: Jjw
  • 2017-10-08

블레이드 러너는 필립 k. 딕의 "안드로이드는 전기 양의 꿈을 꾸는 가?"를 원작으로 하는 SF 영화이다. 1982년에 "블레이드 러너 2019"가 개봉하였고, 이번에 "블레이드 러너 2049"가 개봉되었다. 전작 이후 30년이 흐른 시점이란 설정이지만, 왠지 헤리슨 포드가 그 만큼 나이를 먹었기 때문에 만든 설정이란 느낌적인 느낌이랄까……, 각설.

블레이드 러너 2019가 집요하게 "인간 됨"과 "인간 되기"의 의미를 물었다면, 이번의 2049는 보다 복합적으로 "세계관"을 보여 주려 노력한다. 원작 팬들의 성화를 충족시켜 줘야 고정 관객을 (역시나) 확보할 것 아닌가. 그러나, 영화는 그리 친절하게 세계관을 설명하지는 않는다. 마치 메트릭스 시리즈가 "애니메이션 예고편 정도는 다들 보고 영화관에 왔지?" 라고 했던 것처럼 2049도 30년 사이에 있었던 영화 속 세계의 대사건을 자세히 설명해 주진 않는다. 그런 건 애니메 봐라 거기 다 있다 라고 하는 것이다. 안그래도 런닝 타임이 제법 되는데 세계관 설명하고 그런 건 당연히 패쓰가 정답이기도 하고.

블레이드 러너는 2019이고 2049이고 간에 기독교의 바이블을 참 천연덕스럽게 우려먹는다. 2019가 그나마 메타포로 우려먹었다면, 2049는 아예 대놓고 인용하기까지 한다. 레이첼은 성경 속에 등장하는 이름이다. 한국어 성경에선 라헬로 번역하였다. 창세기에 따르면 야곱(영어명: 제임스)의 아내 라헬(영어명:레이첼)은 벤야민(영어명: 벤자민)을 낳고 난산의 후유증으로 죽었다고 한다. 이 소재는 2049의 큰 줄거리를 형성하는데, 스포일러는 빼기로 하였으니 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영화는 여기에 더해 예수 탄생의 메타포를 섞어 넣는다. 기독교 문화의 전통 속에서 사는 관객이라면 너무나 쉽게 메타포를 발견하겠지만, 그렇지 않은 관객의 입장에선 저 소리가 지금 왜 나와 할 수도 있겠더라. 라헬은 물론 요셉(영어명: 조지프, 조 - 아, 스포일러는 안돼! 읍, 읍, 읍...)의 어머니이기도 하다.

2019의 “인간 되기”가 개인적인 도망치기로 결론났다면, 2049는 도망칠 곳도 없다는 걸 보여준다. 도망칠 수 없다면 그 다음 선택지가 몇 가지 없지만, 영화는 은연 중에 암시할 뿐 보여주진 않는다. 아직은 "때"가 아닌 것이다. 마치 물로서 포도주를 만들었으나 아직은 때가 아니었던 것처럼. 마지막 장면을 칼로 두부 자르듯 잘라 먹은 건 흥행 결과에 따라 속편을 만들겠다는 감독의 강한 의지를 보여주지만, 그냥 아직은 열린 결말 정도로 생각하기로 한다. 다음 작품이 망작이 되면 안되는데 하고 우려반 기대반이다. 다음 흘러갈 줄거리의 선택지가 그닥 많지 않아 드는 걱정인 것이다.

영화 블레이드 러너의 세계관의 원본은 물론 필립 K. 딕의 것이지만, 2049에선 헉슬리의 "멋진 신세계"의 거꾸로 선 버전을 많이 빌려왔다. 세계는 여전히 대량 생산 - 대량 소비 - 대량 폐기의 산업 구조를 유지하고 있고 20세기 후반부터 성업 중인 자본 역시 여전하고, LA엔 여전히 리틀 도쿄, 차이나타운, 코리안타운이 뒤섞여 있다. PPL로 코카콜라, 아타리(응?), 푸조와 같은 기업들이 등장한다. 왜 하필 푸조일까? 포드는 서부랑 안친하고 지엠은 트렌스포머를 미는 중이라서? 모르겠다. 닌텐도는 이미 망했는 지 보이지 않는다.(아타리가 멀쩡한데?) 감독이 PPL을 써먹은 의도는 다분히 부정적 의미가 섞여 있지만, 브랜드 운영자 입장에선 상관 없을 것이다. 어차피 무의식엔 부정어가 없다고 하지 않는가. 이쯤에서 다시 떠오르는 최악의 마케팅 사레. "제가 갑철수 입니까?" 아닙니다……. 소니의 플레이스테이션도 무려 자회사이건만 안나오는데, 영화속 가상 캐릭터가 어째 플레이스테이션 게임 케릭터를 많이 닮긴 했다.

헉슬리의 "멋진 신세계"는 소비와 약물로 유지된다. 2049의 세계 역시 대량 소비와 싸구려 위안품이 세계를 유지 시키는 거의 유일한 처방전이다. 다른 점이 있다면, 헉슬리의 세계 속에서 엡실론은 자신이 처한 불평등을 아예 인지할 수 없다면(또는 그것이 결코 어떠한 대안을 가져 오지 못한다면), 블레이드 러너의 세계에서 리플리컨트는 주어진 수명이 짧다는 것 자체가 통제의 요건이 된다. 그들은 자라나는 과정없이 성체로 제조되고 유년기는 가짜 기억으로 대체되며 그렇게 형성된 기억 속엔 특정 권위에 대한 절대적인 복종이 함께 세뇌되어 심어진다. 다만, 세뇌의 과정은 완벽하지는 않아 상당 수의 리플리컨트들은 "자의식"이 굳어지면서 이를 심적으로 거부할 수 있다. 영화는 심어진 가짜 기억을 바탕으로 만들어지는 리플리컨트의 자의식이 권위에 불복할 때, 그 저항은 어떤 의미를 갖는 지 묻는다. 이른 바 "빅 픽쳐"에 올려진 퍼즐 한 조각일 뿐인 건 아니냐는 질문을 유도한다.

영화속 세계는 말 그대로 "헬"이고 노동하는 인구의 많은 수는 리플리컨트 이거나 아니면 그 보다 하등 나을 것이 없는 "잉여"들로 가득차 있다. 이 세계를 주관하는 소수의 특권자들은 아예 눈에 띄지 않는다. 그들은 현실의 중산층이 도심을 비우고 신도시로 이주하였듯 이미 오프월드로 이전하였다. 그러니 산성비가 쏟아지는 복작거리는 슬램의 골목에서 서로를 혐오하고 치고 받으며 살아가는 이들에게 주어진 유일한 안락은 원초적인 욕망뿐이다. 섹스와 폭력. 그 비참한 도시 속에서 현란한 광고들이 "소비자"를 유혹한다.

"네가 온전히 한 명의 사람으로 인정받을 때는 오로지 '소비'할 때 뿐이야. 나를 사. 나를 가져. 나를 데려가."

소비가 아닌 다른 방식으로 "인간 됨"을 보장 받으려는 건 진짜 인간이 아니라 오히려 리플리컨트들이다. 한 때 유전적인 수명의 제약이 없이 제조된 넥서스 8 타입의 리플리 컨트들은 이젠 발견 즉시 폐기 대상일 뿐이다. 블레이드 러너는 리플리컨트 폐기를 전문으로 하는 일종의 특수사법경찰이고 실제 경찰서장의 통제를 받는다. 이들 역시 상당수가 리플리컨트들이다. 2019에서 넥서스 6 타입 탈영병을 쫓던 블레이드 러너인 데커드 역시 넥서스 8 타입 리플리컨트이다. 여기엔 약간의 혼선이 있는데 2019의 개봉 당시 편집에선 데커드는 '네이티브' 인간으로 여겨지게 묘사됐고 그리하여 "비정한 사냥꾼 인간 VS 인간적인 리플리컨트"의 구도를 만들어 내었다면, 그 후 몇 가지를 손질한 감독판에선 데커드 역시 리플리컨트라는 것을 강하게 암시하였다. 2049에선 데커드가 리플리컨트라는 것을 기정 사실로 설정하고 이야기를 시작한다. 영화 자막 번역자는 리플리컨트를 폐기하는 것을 일컫는 retire를 굳이 퇴역으로 번역하였는데 나름 의미가 있어 그리한 것이겠지만, 보는 내내 불편하였다. 일종의 기계로 취급되는 리플리컨트가 retire 된다면 그건 폐기지 퇴역이 아니다. 영화의 설정상 폐기로 번역하는 게 맞다고 본다.

"각성"한 리플리컨트들은 각자도생의 소비가 아니라 서로의 연결을 통해 인간이 되고자 한다. 그들은 기적을 보았기 때문에 이것이 가능하다고 믿는다. 때가 되면 신비에 쌓인 어떤 존재가 그들을 구원할 것이다. 물론 리플리컨트들이 간증하는 기적에 대한 믿음과 신비로운 구원의 약속에서 그들을 만든 인간은 최소한 결별의 대상이지 결코 신이 아니다. 여기서 더 나아가 2049의 주인공 K.는 기적을 보지 않았음에도 믿으며 그를 위해 희생한다. 블레이드 러너는 여전히 무엇이 우리를 인간이게 하는가를 묻는 영화이다.

뱀발: 리플리컨트를 만드는 것의 경제적 가성비는 잠시 제쳐두고, 리플리컨트에 적용되는 기술을 생각해 보면;

1) 클론: 인간에 대한 체세포 복제 방식의 클론은 이미 기술적으로 가능하다. 다만 현재로서는 대리모의 임신 과정과 '네이티브' 인간이 겪어야 할 모든 성장 과정을 다 거쳐야 한다. 이렇게 해서는 대량생산이 힘들다. 소설이나 영화에선 당연히 클론을 고려하지는 않는다.

2) 줄기세포: 2019에선 리플리컨트들를 이루는 각각의 생체 조직들이 부분품으로 하청을 통해 생산되며 제조사 타이렐은 이를 조립하고 뇌에 기억을 입혀 완제품을 출시하는 것으로 그려진다. 이 경우 순환계와 신경계, 피부와 같이 몸 전체를 아우르는 기관을 각 조직에 어떻게 결합시켜야 하는가란 문제가 남는다. 지금으로선 불가능한 줄기세포 급속 성장 기술과 조합 기술이 필요할 것이다. 그런데 이정도 기술이면 리플리컨트 최초 개발자가 조로증 때문에 죽는다거나 하면 안되는 거 아냐?

3) 뇌과학: 머릿속 신경세포는 성장이 아니라 자살의 방식으로 뇌를 구성한다. 필요한 갯수보다 훨씬 많은 시냅스를 먼저 만들어내고 그 중에 실재 사용하는 것을 남기고 나머지는 소멸시켜 버린다. 이런 방식의 태아 발달은 손가락의 형성에서도 동일한데, 한데 붙어 자라난 손에서 사이 사이의 세포가 소멸하면서 손가락이 생성된다. 그러니까, 이 과정이 생략되면 고래의 앞지느러미와 같은 형태가 된다. 물론 고래는 물 속에서 진화하면서 이 과정이 생략되도록 유전적으로 "코딩" 되었다. 그러니까 영화 속에서 처럼 특정한 금기 사항에 반응하고 기억이 주입된 뇌를 만드려면 시냅스 단위의 유전자 “코딩”과 역시 분자생물학 수준의 기억 조작이 가능해야 한다. 이건 유전학만으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는 아니다.

4) 발달유전학: 개체의 발달은 유전자로만 결정되지는 않는다. 유전자가 태내이든 출산 후이든 지속적으로 환경에 반응함으로써 어떤 형질은 더욱 발달하고 어떤 형질은 억제된다. 우린 아직 이게 왜 이렇게 되는 지를 정확히 알지 못한 채 나타나는 형질을 표현형, 잠재된 것을 포함한 모든 형질을 유전형이라고 부르고 있다. 게다가 유전자의 대부분은 작동하지 않거나 아직은 그게 왜 필요한 지 명확치 않은 슈도진으로 되어 있다. 발달유전학이 보다 발전하여 슈도진의 비밀을 알게 되면, 리플리컨트의 게놈은 인간의 것보다 심지어 50% 정도 짧을 수도 있다. 그러면 제조비용은 아마 많이 절약되겠지.(응?) 텔로미어 문제도 해결해야 한다. 염색체의 끝부분에 위치하는 유전자들인 텔로미어는 지금으로선 수명을 결정한다는 것 이외엔 그리 알려진 것이 없다. 2019에서 수명 설정을 4년으로 제한한 넥스 6 타입의 리플리컨트들은 텔로미어가 극도로 짧을 것이지만. 그렇게 해도 개체가 정상적으로 “기능”할 수 있으려면 무언가 특단의 조치가 필요할 것이다. 예를 들면 상처의 급속한 재생을 위해 일부러 발암 유전자를 삽입할 수도 있겠다. 타이렐 입장에서야 어차피 수명 4년짜리 공산품이니까.

5) 재생산: 클론인 복제양 돌리는 멀쩡히 새끼를 낳았다. 그런데, 위에서 말한 이유로 부분적인 대량 생산을 거쳐 제조되는 리플리컨트들은 영화 속에서도 재생산에 많은 문제가 있는 것으로 묘사된다. 어찌보면 너무나 당연한데, 제조 비용과 시간을 절감하기 위해선 목적에 불필요한 유전자를 길게 넣어둘 이유가 없는 것이다. 그런데, 어떤 이유로 리플리컨트가 자식을 낳아야 할 필요가 있다면, 비용의 증가를 감수하고 현존하는 인간의 표준 게놈 전체를 사용하여 만들면 될듯 하지만, 2049의 타이렐사는 실패를 반복하며 성공하지 못하고 있다. 기술적으로 보면 감수분열과 그에 따른 유전자 재조합에 문제가 있기 때문일 것이다. 인간은 생식 세포가 생성될 때 일종의 도박을 한다. 자신이 갖고 있는 유전자를 섞어서 다시 조합하여 새로운 유전자 배열을 만들어낸다. 부모와 자식이 닮은 듯 안 닮은 이유는 둘의 유전자들 반씩 받았다는 것 말고도 둘 다 유전자를 재조합하여 생식 세포를 만든 뒤 수정하기 때문이다. 아주 오래된 어느 때 인간의 선조는 이 과정에서 두 유전자가 하나로 엉켜 붙는 사고를 겪었다. 그래서 인간 염색체 2번은 텔로미어가 염색체 끝뿐만아니라 가운데에도 존재한다. 그 결과 다른 모든 유인원의 염색체는 24쌍인데 인간만 23쌍이다. 물론 이 사건은 아주 우연한 돌연변이의 결과일 뿐이다.

2 같이 보기[ | ]

3 참고[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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