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러디스 몽크

1 개요[ | ]

Meredith Jane Monk; Meredith Monk ( 1942 ~ )
메러디스 제인 몽크; 메러디스 몽크
  • 미국의 작곡가, 연주자, 보컬, 디렉터, 영화제작자
  • 장르: 아방가르드
  • 활동시기: 1968년 ~

 

2 # 한국공연[ | ]

[ Meredith Monk in Korea (1997/10/9-10) ] [Pollen, mailto:pollen@inote.com]

세계연극제 공연의 막바지에 저희 학교 백주년기념관에서 열렸던 Meredith Monk의 공연을 보았습니다.
여러 매체에 기사가 많이 실린 것 같은데, 혹 못 읽으신 분을 위해서 일단 팜플렛의 소개글을 추려 드리지요.

Meredith Monk in Korea ###

일시 : 1997년 10월 9일, 10일 장소 : 연세대학교 백주년기념관 Meredith Monk : Unaccompanied Voice, Piano David Eldon Meschter : Sound Designer Rikki J. Taylor : Lighting/Technical Director

.....현대 예술사를 대표하는 거장 메레디스 몽크는 안무가인 동시에 작곡가, 가수, 영화감독으로 활동하고 있다. 1964년 사라 로렌스 대학 무용과 졸업 후 안무 분 아니라 작곡과 멀티미디어 작업을 시작했다.
4대에 걸친 성악가 집안 태생으로 필라델피아 예술대학(1989년)과 Bard Gollege(1988년)에서 명예 예술학 박사학위를 받은 몽크는 록펠러재단의 안무가상(1987년)...... (등등 수많은 상을 받았다네요)

인간이 갖고 있는 가장 근원적인 악기인 목소리의 음악적 잠재 가능성을 깊이 있게 추구해 온 메레디스 몽크는 목소리만으로 색채감, 질감, 인물의 성격, 시각적 배경 및 충동 등을 표현한다. 따라서 몽크의 음악 에는 가사보다는 소리 자체의 음소가 보다 중요하다. 가사는 특정한 의미를 중시하지만, 단어를 사용하지 않고 소리만 활용함으로써 가수의 목소리에 감정을 더욱 강하게 실을 수 있기 때문이다. 각기 다른 감정의 반향에 적합한 소리를 선택하는데, 그 소리가 이미지와 제스처를 불러 일으켜 감각을 위한 시정을 창조한다. 그리하여 구술적이며 추론적인 사고에서 벗어나는 대신 초자연적인 수준에까지 도달할 수 있는 근원 적인 소통을 추구한다.
장르 간의 벽을 허물고 크로스오버를 실험하는 작업(interdisciplinary performance)에 전념해온 몽크는 1964년부터 현재까지 작곡(오페라, 영화음악, 음악극, 성악 등), 무용, 비디오, 영화 등 공연예술의 모든 장르를 넘나들고 통합하는 분야에서 100편 이상의 작품을 창조했는데, 특히 목소리의 영역을 확대하는 기술에서 독보적인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작곡가로서 스스로를 '목소리의 고고학자'로 간주하는 몽크는 1965년부터 목소리의 잠재가능성을 넓히는 작업을 시도했는데 3옥타브를 자유자재로 구사하는 자신의 목소리만으로 수많은 등장인물과 배경, 색채감과 질감을 표현하는 방법을 개발해냄으로써 '목소리의 마술사'로 불리운다. 몽크는 자신을 어떤 한가지 범주에 한정시키는 것에 반대 하지만 최근에 가진 한 인터뷰에서 자신을 작곡가로 지칭했다. 그녀는 가수들에게 울부짖고, 깔깔거리고, 찬송하고, 낮게 흥얼거리고, 야유하고, 한탄하기를 요구하는 음악을 작곡했다. 넓은 의미에서 몽크는 안무동작과 무대 이미지를 활용한 작곡가라 할 수 있다.

저는 이름만 어딘가에서 들었을 뿐, 한 번도 Monk의 음악을 접해보지는 못했었습니다. '3옥타브 음역을 넘나드는.....'등등의 기사에서 대단한 고음과 저음을 오르내리는 식의 을 구사할 줄 알았는데, 그런 방법은 아니더군요.

1부 : Songs from the Hill (1997)
1. Porch 2. Mesa 3. Jade(Old Woman's Song)
4. Wa-lie-oh 5. Insect 6. Descending 7. Silo 8. Breath Song 9. Bird Code 10. Lullaby #4 11. Prairie ghost 12. Jew's harp

Monk는 의외로 소탈하고 유머감각도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마이크 하나만 덜렁 놓여있는 텅빈 무대에 그녀가 올라서자, 사람들은 점잖게 박수를 쳤고 그녀는 "침묵"을 조용히 기다렸습니다. 무반주 Voice Per- formance였기에, 감기걸린 사람들은 대단히 곤혹스럽게 터져나오는 기침을 참아내야 했고, 팜플렛 넘기는 소리까지 조심스러운 시간이었죠.
Bobby McFerin을 떠올릴 수 있을까요? 그런 식이었지만, 그런 식이 아니었죠. 어쨌든 그녀의 목소리와 약간의 동작과 표정들로 공연은 진행되었고, 1-2-3번이 끝났을 때, 저는 솔직히 당혹스럽기 그지 없었 습니다. "음성만으로 모든 걸 다 한다"는 방법은 전례가 없었던 것은 아니었지만(몇몇 그레고리안 성가와 아카펠라도 있지 않습니까?), 그녀의 코드 자체가 너무나 비정형적이고 낯설더군요. 아프리칸적인 느낌도 있을 거라는 자신의 설명도 있었지만, 우리가 '음악적'이라고 자각할 수 있는 음계들은 아니었고 오히려 구조적인 언어가 생겨나기 이전에, 태초의 음성들이 그러하리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죠.

당혹스럽던 1-2-3은 낯선 음조와 음색들 때문이기도 했지만, 적어도 그 음들로부터 떠올릴 수 있는 물적 대상이 명확하지 않았기 때문이 었을 겁니다. 4-5-6번에 이르러서야 청중들이 반응을 보이기 시작하 더군요. 특히 5번은 말그대로 파리, 벌 소리등이 그녀의 입에서 울려 퍼지면서 코믹한 행위도 수반되었기에 청중들이 즐거워하며 함께 웃을 수 있었습니다.
"Wa-lie-oh, Wa-lie-oh, Wa-Wa-Wa-ah-ah-a-at-oh. oh. oh."
이런 식의, "의미없는" 음소들이 각각 고저와 장단, 강약을 달리하며 음의 흐름을 만들어냅니다. 8번은 "허-허-헉. 헉. 헉. 헉-허-헉"과 같은 호흡소리로 기막힌 음악을 이루어냈고, 9번에서는 새소리가 들렸습니다. 라고 말하면 안될 것입니다. 왜냐하면, 새를 표현하면서 새소리를 흉내내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말을 할 때 나올 법한 소리들 로 새소리를 "연상시키는" 식이기 때문입니다. 도 마찬가지 였죠. 독특한 전자음이 나는 whistle을 입에 대고 불렀던 12번을 끝으로 일단 1부는 끝이 났습니다. New Mexico의 사막에서 일어났던 감흥 들을 표현했다는군요. "목소리의 다양한 면모들을 탐색한다"는 해설이 붙어있군요.

2부 : Music for Voice & Piano (1971-1993)
1. Gotham Lullaby 2. Travelling 3. Madwoman's Vision 4. Choosing Companions from ATLAS ; an opera in 3 parts 5. The Tale

2부는 피아노 한대와 그녀의 목소리로 채워졌습니다. 1부보다는 덜 당혹스러웠으리라는 것은 짐작하실 수 있겠죠. 그녀의 피아노는 기본 적으로 미니멀적인 음계를 이루고 있었는데, 그것은 완벽히 동등한 하나의 악기로서 그녀의 목소리가 이용되고 있었기 때문에 그래야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라는 자신의 영화에 삽 입되었던 3번은 중세에 살면서 금세기를 볼 수 있었던 한 소녀와 그를 이해하는 유일한 한 사람, 그 마을에 살던 (무당같은) 할머니와의 영적 소통을 표현한 곡으로 대단히 인상 깊었습니다. Monk의 손에서, 단조 롭고도 암울한 피아노가, Monk의 입에서, 소녀의 목소리와 할머니의 목소리가 같이 존재하고 있었죠. 물론, 여기서도 의미있는 언어는 사용 되지 않습니다. 다소 듣기 편한 4번이 흐른 뒤에, 마지막 곡 5번은 공연지의 언어로 개사해서 부른다는 그녀의 관행대로 우리말로 노래 했는데, 격렬한 반주 위에서 "내 이름은 xx. 나는 xx를 가지고 있다"라는 기본 syntax에 각기 다른 단어들을 끼워 넣었습니다. 양말, 영혼 등등...
(솔직히 뚜렷하게 들리지는 않더군요). 마지막 곡이 역시 제일 반응이 좋았죠. 그녀는 곡명 소개를 할 때도 우리말로 또박또박 바꿔 말하려 애썼는데, 배타적인 예술가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두 번의 앵콜이 있었습니다. Click Song이라 이름붙여, 즉흥적으로 부르는 것 같았는데..... 다음과 같이 합니다. 혀를 동그랗게 말아올려서 윗천장을 강하게 튕기면 "똑똑똑" 비슷한 소리가 나죠? 이건 누구나 할 수 있는 겁니다. 근데, 그것이 대단한 변박으로 진행되면서(일테면, percussion의 역할을 하는거죠), 그 위에 또한 대단히 아름다운 허밍이 얹힙니다. 한 사람이 그걸 다하더군요. 가끔 클래식 기타를 듣고 있으면 저건 오버더빙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드는 연주가 있죠? 그런 느낌을 자아내는 곡이었는데, 감탄이 나올 수 밖에 없더군요.

이런 아방가르드에 대해 뭐라 말해야 할지 모르겠더군요. 공연 처음에 "저 사람은 우리가 그를 이해하고 있다고 느끼며 소리를 하고 있는걸까?"
하는 생각이 들었는데, 후반부에 가서는 그녀의 방식이 조금 귀에 익숙 해지더군요. 그래도 잘 와닿지 않는 곡들도 꽤 있었습니다. 이해의 방식 으로 접근하는 건 아니겠지요? 직관적으로 디코딩이 되느냐, 안되느냐의 문제인 것 같습니다. 디코딩이 된다면, 느낌이 있는거고 - 그걸 어떤 느낌인가하고 상술하게 되면 낭패를 보지만 - 안된다면, 아무 느낌이 없는 식이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더군요. 아방가르드는 폐쇄적인 단일 통로의 인코딩-디코딩 방식을 지니고 있는 예술입니까? 아니면, "직관"에 의한 communication이 가능하다는 의미에서 더없이 자유롭고 해방적인 장르입니까?
당혹스러움은 분명히 거기 있었습니다.

N.P. Meredith Monk,

3 참고[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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