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큔-라이샤워 표기법

매큔-라이샤워 표기법 , 맥쿤-라이샤워표기법

1 간단한 설명[ | ]

매큔-라이샤워 표기법은 1937년에 두 대학원생 매큔(George M. McCune, 1908-1948)과 라이샤워(Edwin O. Reischauer, 1910-1990)에 의해 만들어진 한글 로마자 표기법이다. 즉 서른살로 안된 두명의 학자가 자신들의 편의를 위해 만든 로마자 표기법이라는 얘기다. 이 로마자 표기법은 한국에 대해 연구하는 이들에 의해 광범위하게 받아들여졌는데 그것은 음성학적으로 '비교적' 정교하게 한국어를 음차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들은 학술적 용도로만 쓰면 되었기에 정교하게 한국어를 표현할 수 있으면 그것으로 되었던 것이라서 별 문제는 없었다.

이후 해방과 더불어 한국은 조금씩 국제사회를 향해 나아갔고 한국에 대한 해외의 관심도 점진적으로 증가하게 되었다. 그 와중에 한국 정부는 한글 로마자 표기법을 네번에 걸쳐 개정하였다. 아니 네번에 걸쳐 개정했다는 말은 부정확하고 제정-개정-개악-개정 이렇게 해서 네번이라는 얘기다. 그리고 저기에 있는 '개악'이 바로 맥쿤-라이샤워 방식이다. 그것이 개악이 된 이유는 음운표기체계가 아니라 음성표기체계이며 음성표기체계는 음운변화들을 반영하기 때문에 매우 복잡하다. 복잡한 것은 일반인들이 잘 쓸 수 없다. 일반인이 안쓰는 것이 표준이 되었을 때 등장하는 것은 혼란 뿐이다. 그리고 지금도 몇몇 식자층에의해 음성표기체계가 주장되고 있으며 슬프게도 가장 최근에 개정된 2000년 문화관광부 안 역시 매우 단순해지고 합리적이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음성표기체계적인 요소를 담고있어서 혼동이 많다.

모두 우리말 사용의 주체가 우리라는 사실을 간과하고, 시스템이란 단순해야한다는 '단순한' 사실조차 이해하지 못하는 무식한 식자층 때문에 벌어진 일이다. 어쩌다보니 그런 어이없는 악의 씨를 뿌린 두 사람중 하나인 라이샤워 교수가 쓴 다음의 글을 읽어보면 무식한 식자층이 얼마나 범 국민적인 피해를 끼치는가를 다시한번 느낄 수 있으며 가슴을 치지 않을 수 없었다.

한국에서 맥쿤-라이샤워 표기법이 혼란의 원흉이 되고 표준이 어떠해야 하는가에 대한 기본도 생각해보지 못하는 한국인들을 보면서, 단지 스스로의 필요에 의해 시스템을 만들었던 라이샤워가 얼마나 답답해했을지 안봐도 훤하다. 그것도 한국에 대한 관심이라기보단 장보고를 사랑했던 일본의 스님 엔닌을 연구하던, 그리고 훗날 미국 일본학계의 태두가 되는, 대학원생이 슬쩍 만든 것을 말이다. 나는 정말 이 나라가 여기까지 온 것이 언제나 기적같다. 그나마 애국가를 줄기차게 불러서 '하느님이 보우하'신 덕에 겨우 가능한 일이었지 않나 싶다.

젠장 그 시대에 대박 일기를 남긴 엔닌 ISBN:8989524148 이나 읽어봐야겠다. 라이샤워 교수가 쓴 엔닌 입문서는 '중국 중세사회로의 여행'이다. 오늘의 소득이다. -- 거북이 2004-10-11 9:51 pm

2 라이샤워 교수의 견해(1980)[ | ]

이 편지는 라이샤워 교수가 양성철 교수에게 보낸 것을 김기중씨가 자신의 논문에 전재하였고 이를 이현복씨가 짧게 정리한 것이다.[1]

1980.2.19
켄터키대 정치학과 학과장
양성철 교수

양교수께.

한국어의 맥쿤-라이샤워 식 로마자 표기법에 관하여 서로 친구간인 서교수에게 보내신 귀하의 편지 사본 한통을 저에게 보내주셔서 감사드리면서, 귀하에게 몇가지 내용을 바로잡고 해명해야 하겠다고 생각합니다.

  1. 첫째로 본인이 로마자 표기법을 고안해 낸 것은 하버드 대학원에서 7년째 공부를 하는 대학원생으로서 한국에서 잠시 살고 있을 때였습니다.
  2. 둘째로 우리들은 나의 제안으로 이 표기법을 만들었는데 당시에는 통일된 체계를 전혀 찾을 수 없었고 나로서는 엔닌(円仁, 792-862) 스님의 여행(入唐求法巡礼行記)에 관한 나의 연구 과정에서 나타나는 한국 이름을 표기할 수 있는 어떤 방법이 필요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나는 맥쿤에게 적어도 우리 둘 만이라도 동일한 표기법을 정하여 쓸 수 있지 않겠느냐는 제안을 하였던 것입니다.
  3. 셋째로 우리는 한국의 언어학자, 음성학자들로부터 많은 도움을 받았는데, 당시와 같이 지식층에 대한 일본의 박해가 극심한 시대에 음성학과 언어학은 한국 학자들이 안심하고 연구할 수 있는 몇개 안되는 분야였기 때문입니다. 어떤 의미에서 우리는 '전문 음성학적' 자문을 너무나 많이 받은 것이고 그로인해 우리의 체계는 너무도 음성학적으로 정밀하고 따라서 지나치게 복잡하게 된 것입니다.
  4. 넷째로 1937년 가을 당시로는 머지않아 한국이 해방이 되고 또 한국어의 로마자 표기법이 광범한 실용성을 갖게 되리라고 상상하기는 어려웠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학자들만을 염두에 두고 우리의 표기법을 고안했으며 또한 이를 가능하면 중국어의 웨이드-자일스 안과 일본어의 헵번 안으로 대표되는 동아시아의 두 표기체계에 맟추려고 노력했습니다. 만약에 한국이 곧 다시 자유국가가 되고 한국어의 표기법이 널리 사용되리라는 생각을 할 수 있었더라면 나는 신문과 학계가 다 받아들일 수 있는, 훨씬 실용적이고 단순한 체계를 고안해 내려고 노력했을 것입니다.
  5. 다섯째로 나는 앞으로 학술용과 일반용으로 모든 이가 사용할 수 있는 통일된 로마자 표기법이 마련되어 채택되기를 진심으로 바라고 있습니다. 아직까지 사람마다 기관마다 자기 나름의 여러가지 독자적인 방법을 주장하여, 모든 사람을 대단히 혼란스럽게 하는 것은 정말 견딜 수 없는 일입니다.
에드윈 O.라이샤워

3 참고[ | ]

  1. 이현복(1983), 로마자 표기법에 대한 라이샤워 교수의 견해, 말소리 제 6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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