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철 - 일본제국의 싱크탱크

  다른 뜻에 대해서는 남만주 철도 문서를 참조하십시오.

1 개요[ | ]

Mantetsu: "chi no shudan" no tanjo to shi
満鉄―「知の集団」の誕生と死 → 만철 - '지식집단'의 탄생과 죽음
만철 - 일본제국의 싱크탱크

<img src=" " style="height:240px"/>  

2 책소개 (알라딘)[ | ]

약칭 만철이라 불리우는 남만주 철도 주식회사는 당시 일본 최대의 주식회사로 만주에 군림했다. 그리고 '만철왕국'이라는 이름으로 불릴 정도로 중국 동북부에서 많은 영향력을 행사했다. 저자의 표현에 따르면 '명칭은 주식회사였지만 그 실상은 하나의 식민지 국가였다'라고.

'만철은 메이지 대제의 유산으로서 국민의 피와 살의 결정체다'라는 만철사원회의 선언서로부터 만철의 탄생과정을 살펴보고, 1차 세계대전을 지나며 어떻게 그 왕국이 확립되었는지 살펴본다. 그 경영 방식과 이념에 대해서도 서술하고 있으며, 스포츠, 영화, 음악 등의 전파 등을 통해 만철이 끼친 문화적 영향에 대해서도 짚고 있어 흥미롭다.

3 # 자일리톨[ | ]

이 책은 1906년 러일전쟁 이후부터 1945년 일본의 패전에 이르는 기간동안의 “남만주철도회사(이하 만철)”의 역사를 다룬다. 저자가 제시하고자 하는 주제는 만철은 일본제국(식민지역을 포함하여)을 경영하기 위한 두뇌집단이었으며, 그 영향은 패전이후 관료주도형 통제경제(이른바 1940년체제)를 통한 일본의 경제적 부흥에 상당한 영향을 끼쳤다는 것이다. 러일전쟁의 전리품이었던 만철을 식민지배를 위한 거대기구로서 위치지은 인물은, 고다마 겐타로와 고토 심페이였다. 이들은 만주나 조선보다 일찍 일본제국의 식민지가 되었던 대만에 확고한 식민지배의 기반을 다져 놓았던 인물이었다.

만주의 주재배작물인 대두와, 그 탄맥이 너무나 거대한 나머지 획득초반 채굴방법을 결정하는데만도 엄청난 시간을 끌었던 푸순탄광, 그리고 유럽을 향해 열린 문이라는 지정학적 위치, 이 셋만 놓고 보아도 만주는 일본으로서는 절대로 양보할 수 없는 요충지였던 셈이며, 이의 효율적인 관리체제를 만드는 것이야말로 식민지배를 위한 시급한 과제였다.

따라서 만철은 그 내부에 자원탐사, 경제, 산업개발, 치안, 안보 등의 총체적인 문제를 해결할 역량을 지닌 두뇌집단을 필요로 하였고, 이는 결국 만철조사부의 창설로 이어지게 되며, 만주사변이후 관동군, 만주국과 더욱 긴밀한 관계 속에 일본의 식민지배를 위한 전문연구기구로 발전하게 된다. 특히, 저자는 좁은 지면에서도 만철 속의 인맥관계에 지나치리만큼 많은 공간을 할애하고 있는데, 전후 일본 국철총재로 신칸센의 건설을 추진했던 소고 신지, 수상을 역임하게 되는 기시 노부스케, 고토 심페이의 조카이며 한일회담당시 외상을 지냈던 시이나 에쓰사부로 등 만주그룹이 전후 추진했던 정책들이 만주에서의 전시(戰時) 경제구상에서 비롯된 것이었음을 논증하고 있다.(박정희, 서영훈, 정일권 등 남한내 만주인맥들에 관해서는 MBC “이제는 말할 수 있다”를 보라)

이 책을 읽으면서 크게 두가지 점이 흥미롭고 놀라웠다. 첫째는, 당시 오가미 스에히로 등 맑시즘에 경도된 일군의 이단적 경제학파들이 일본본토를 떠나 만철조사부에서 이른바 ‘만철 마르크스주의’를 꽃피워 나름의 경제정책으로 입안시켰으며, 이것이 전후 일본의 관료주도형 통제경제체제(1940년체제)를 확립하는데 큰 공헌을 했다는 것이다. 맑스는 공산주의 이후의 생산양식이나 사회에 대해 거의 언급하지 않았다. 그의 경제연구는 자본주의를 분석하여 그 붕괴의 필연성을 밝히는 것이었을 뿐이다. 따라서 1917년 러시아혁명 이후 현실사회주의국가들에서 취했던 경제정책들은 사회주의가 아니라 국가자본주의에 가깝다라는 주장이 더욱 타당성을 얻는다. 차문석의 “반노동의 유토피아-20세기 산업주의에 굴복한 사회주의”에서 소련의 경제정책은 다름아닌 1차대전시기 독일군부에 의한 통제경제에서 착안한 것이라고 한다. 그리고 후발 현실사회주의국가들도 동일한 경로를 밟았다. 결국 지금까지 존재하며 서로 죽일 듯 체제경쟁을 해왔던 현실사회주의나 자본주의나 그 본류는 동일하다는 것이고, 완전경쟁에 의한 laissez-faire는 미시경제학교과서에나 존재하는 이상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둘째로는, 일본인들의 치밀한 기록의 문화다. 만주국 시절 일본이 남긴 만주관련 자료들은 그 양의 방대함이나 질의 치밀함을 놓고 보더라도 그것을 능가하는 사료를 찾을 수는 없다는 말을 예전 근대 동아시아관련 수업을 수강하며 들은 적이 있다. 이 책에서도 그 실례를 찾을 수 있는데, 만철 경제조사회가 개편되어 산업부가 되기 전 4년 반 동안에 1,882건의 조사 업적을 정리해 냈다는 것이다. 이것은 산술적으로 계산하더라도 연간 400권 이상, 한달에 30권 이상, 즉 하루에 한권 이상의 출판물들이 인쇄되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중국인들과 조선인들의 피땀 위에 그들만의 백년왕국을 일구기 위한 몸짓이라고 치부하기에는 그들의 열정과 노력이 너무나 가상하게 생각되었다.

물론 아쉬운 점도 있다. 이 책은 분량이 적어 읽는데 그다지 부담이 되지 않지만, 저자의 의도대로 당시 만철이라는 방대한 조직을 여러 시점을 통해 바라보려 했기 때문에 언뜻 책내용이 정리되지 않았다는 인상을 주며, 당시 만주 및 일본본토에 대한 역사적 배경지식이 없이는 쉬 흥미를 잃을 가능성이 많다고 생각된다. 또한, 저자가 나름대로 당시 갖은 착취와 핍박을 받았던 재만 중국인, 한국인들에 대한 유감을 표하고 있기는 하지만, 일본제국주의와 당시의 시대상에 대한 호의적인 시선이 간간이 엿보여 일본인 저자의 한계가 느껴지기도 한다.-- 자일리톨 2004-4-24 9:52 am

4 같이 보기[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