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렴계

Pinkcrimson (토론 | 기여)님의 2023년 8월 20일 (일) 11:46 판 (새 문서: == 개요 == ;주 렴계 ;周濂溪, 1017~1073 * 북송시대의 유학자. 자(字)는 무숙(茂叔)이고 호(號)는 염계(濂溪)이다. 본래 이름은 돈실(敦實)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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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 ]

주 렴계
周濂溪, 1017~1073
  • 북송시대의 유학자. 자(字)는 무숙(茂叔)이고 호(號)는 염계(濂溪)이다. 본래 이름은 돈실(敦實)이었으나 돈이(敦頤)로 이름을 바꾸었다. 그는 도가(道家)와 불교의 주요 인식과 개념들을 받아들여 우주의 원리와 인성에 관한 형이상학적인 새로운 유학 이론을 개척했고, 그의 사상은 정호·정이 형제와 주희 등을 거치며 이른바 정주학파(程朱學派)라고 불리는 중국 유학의 중심적 흐름을 형성했다. 때문에 그는 한(漢) 나라 때의 훈고학(訓詁學)을 거치며 끊어졌던 성(性)과 도(道)에 관한 철학적 논의를 되살려 유학을 새롭게 부흥시킨 인물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그의 저서 『태극도설』에서는 인성과 우주의 원리를 태극도(太極圖)를 중심으로 설명하고 있다. 그는 무극(無極)과 태극(太極)이 하나이며, 태극이 음양(陰陽)으로 나뉘고, 여기에서 다시 화(火)·수(水)·목(木)·금(金)·토(土)의 오행(五行)이 생겨난다고 하였다. 그리고 이를 근거로 인간의 선(善)·악(惡)과 인(仁)·의(義)·예(禮)·지(智)·신(信)의 오상(五常)을 설명하려 했다. 이는 이기(理氣) 철학의 기본형식을 제시해 성리학의 발달에 큰 영향을 끼쳤다. 주희가 『태극도설해(太極圖說解)』를 지어 자신의 주된 이론적 근거로 삼는 등 태극도설의 해석은 후대의 유학 논쟁들에서도 매우 중요하게 다루어졌다.


2 참고[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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