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대외관

Pinkcrimson (토론 | 기여)님의 2023년 4월 27일 (목) 23:34 판

1 개요

일본의 대외관

2 청일관계 관련 대외론의 도식화

  1. 구미의 압박→ 중·일 양국의 제휴에 따른 저항→ 『청일협조론』
  2. 제휴국으로 청국이 무력하다는 인식→ 청국의 개조·강화 필요라는 판단→ 이른바 『청국개조론』
  3. 제국주의 시대의 개시→ 청국의 강화를 기다릴 틈이 없다는 긴박감→ 제휴의 포기→ 『탈아론』
  4. 선진 제국주의 세력에 동조→ 『중국분할』 지향→ 청일전쟁→ 침략론”
하시카와 분조橋川文三 『순역의 사상-탈아론 이후順逆の思想―脱亜論以後』(1973), 33쪽)

3 임오군란·갑신정변 시기 (1882~1884)

  • 청나라와 일본의 대립기 : 일본이 청을 압도했다고 하긴 어려움
  • 반대되는 두가지 대외론
    • 조선의 일본화 시도 = 청일간 긴장 = 아시아(조선) 개조론
    • 조선 진출 억제 = 청일협조 = 아시아(중국) 연대론
  • 기본적으로 개조론, 협조론 양쪽을 가지고 있었음
    • 조선의 개화를 도와 독립을 유지하게 한다
    • 러청이 조선을 삼킬수 없게 해야하고 일본이 조선을 탐내지만 러청의 눈이 두려우므로 현상 유지가 최선
    • 청에 의해 갑신정변이 좌절되자 탈아론쪽으로 기움

3.1 후쿠자와 유키치의 경우

후쿠자와 유키치는 주로 자신의 주필로 있는 신문인 시사신보에 논설을 게재
  • 1881년 9월 『시사소언』 「조선개조론」
1882년 7월 임오군란 『시사신보』
대청강경론 + 조선내 거점확보
  • 1882년 8월 1일
  • 1882년 11월 『병론』 : 청나라는 강하다
  • 1882년 12월 『시사신보』 :
  • 1883년 10월 : 프랑스의 베트남 침공 = 아시아 연대론 유효 : 청나라의 수세 = 일본의 기회
  • 1883년부터 1884년 전반 : 청은 경쟁관계, 조선은 아직 개조 가능
  • 1884년 8월 : 조선이 베트남처럼 당하게 하지 않기 위해 일본이 도와야 = 갑신정변 개입 시사
  • 1884년 9월 : 더이상 청을 이웃으로 보기는 어려움. (프랑스에게도 졌으므로) 두려운 존재도 아님
1884년 12월 갑신정변
  • 1884년 12월 : 청과의 전쟁 불사
  • 1885년 2월 : 조선내 친일파 소멸로 조선개조 포기
  • 1885년 3월 「탈아론

3.2 아오키 슈조와 자유신문의 경우

아오키 슈조(青木周藏, 1844~1914)는 조슈번 출신의 정치가, 외교가다. 귀족원 자작子爵 의원, 추밀고문관, 제8대·제15대 외무대신을 역임했다.
  • 1883년 3월 : 서양(러시아) 공동대항을 위한 청일협조론
  • 프랑스의 베트남 점령 -> 일본이 조선점령을 해도 러시아 남하는 없을것
  • 1885년 3월 : 대청개전 + 조선진출
자유신문
  • 1882년 7월 : 임오군란을 기화로 조선에 무리하게 들어가면 청러의 개입이 있을 것
  • 1882년 9월 : 청러가 조선을 지배못하게 하려면 일본도 조선 점유 불가 [청일협조론]
  • 1883년 6월 : 청이 프랑스에게 이기면 다음은 조선을 노릴 것이고 청일대립이 예상
  • 1884년 4월 : 러시아보다 청이 더 조선을 탐낼 것
  • 1884년 8월 : 일본은 프랑스를 지지할 필요가 있음 [탈아론]
  • 1884년 12월 : 청의 사과 요구

4 같이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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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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